이탈리아 역사 - 르네상스
이탈리아 역사 -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예술, 건축, 과학, 역사, 정치 전반에 그리고 그 영향력을 전 유럽에 끼치게 됩니다.
중세 말기에는 이탈리아 중부, 남부가 북부보다 매우 가난했습니다. 로마는 거의 폐허가 되었고 교황령은 법과 질서가 거의 없는 느슨하게 관뢰되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의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됩니다. 그리고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는 외국의 지배를 한 동안 받게 됩니다.
지중해와 이를 아우르는 이탈리아의 무역로는 문화와 지식의 주요 통로였고, 이탈리아들의 도시 국가들은 이 기간동안 크게 확장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정도로 그 파워가 세지게 됩니다.
하지만 1348년 흑사병이 발생, 다른 유럽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도 큰 타격을 입히게 되어 인구의 1/3이 사망하게 됩니다.
인구 통계학적, 경제적 재앙으로부터의 회복은 도시와 무역, 경제의 부활로 이어져 인문주의와 르네상스 (15-16세기)의 연속적인 단계를 크게 자극했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다시 서구 문명의 중심지로 돌아오게 됩니다.
르네상스는 경제, 도시화 뿐만 아니라 예술과 과학의 재생이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재탄생은 수세기 동안 잊혀진 수도원의 도서과이나 이슬람에 숨겨진 고대 텍스트의 재발견과 그리스어 및 아랍어의 라틴어 번역에 의해 촉진되었습니다. 또 이 시기에 무너져가는 동로마 제국을 피해 지식인들이 이탈리아 서부로 이주한 것도 르네상스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르네상스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토스카나 지역에서 시작됩니다. 이후 남쪽으로 퍼져 로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16세기에 절정에 이릅니다. 르네상스의 idea 는 시에나, 루카와 같은 토스카나의 이웃국가로 퍼지기 시작하였는데 토스카나식 건축과 회화양식은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 국가에서 채택하게 됩니다.
또한 르네상스는 경제 발전을 이끄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베니스, 제노아는 해상도시국으로 시작해 무역 개척자 역할을 하게 됙었으며, 이후에는 밀라노, 피렌체 등 북부 이탈리아가 경제적 발전을 이끌게 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9세기부터 서서히 등장하여 14세기에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최초의 진정한 국제 금융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거래 가능한 채권이라는 개념이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도시 국가 (예: 베니스, 제노아)에 의해 발명되고 사용되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 철학, 예술, 건축
르네상스 문학은 일반적으로 페트라르카, 조반니 보카치오에서 시작되었다 평가됩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작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등)와 이슬람 과학자들의 작품들이 기독교 세계로 유입되어 유럽 학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자료를 제공하게 됩니다. 시인 Poliziano, 플라톤 철학자 Marsilio와 같은 15세기 지식인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작품들을 광범위하게 번역하였습니다.
16세기 초 Baldassare Castiglione는 자신의 책 The Book of the Courtier에서 이상적인 신사, 숙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비젼을 제시하였고 Niccolò는 The Prince 라는 자신의 책에서 현대 정치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은 피렌체 대성당,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리미니의 Tempio Malatestiano 등이 있습니다.
발견의 시대
해양 도시 국가, 해양 공화국, 그리고 이탈리아 탐험가로 인해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되고, 이로 인해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화를 시작하는 그 토대가 마련되는 시기입니다.
이탈리아 탐험가와 항해자들은 오스만 제국을 우회하여 인도로 갈 수 있는 항로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었습니다. 인도 대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유럽인들의 침략과 정착을 위해 이를 개척한 공로를 스페인으로부터 인정받게 됩니다.
계속되는 전쟁
14세기 북부 이탈리아와 중부 이탈리아의 여러 국가들이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로는 밀라노, 피렌체, 피사, 시에나, 제노바, 페라라, 만투아, 베로나, 베니스 등이었습니다. 중세 북부 이탈리아는 교황권 세력과 신성 로마 제국 세력 사이의 오랜 패권 싸움으로 더욱 분열되었습니다.
도시 국가 간 전쟁이 흔하였고 이탈리아 외부로부터의 침략은 간헐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르네상스 정치가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르네상스 초기 도시 국가들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육지와 바다에서 지속적으로 전쟁이 발발하는데, 육지에서 이러한 전쟁은 주로 콘도티에리 (condottieri)로 알려진 도시 국가 용병 군대에 의해 벌어집니다. 13세기 이후 군대가 주로 용병으로 구성되어 강한 도시 국가들은 그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병력을 지니게 됩니다.
15세기가 되어 강력한 도시 국가들은 근처 작은 이웃 국가들을 병합하게 됩니다. 피렌체는 1406년 피사를 점령했고, 베네치아는 바도바와 베로나를 점령, 밀라노 공국은 파비아와 파르마를 포함한 현재 롬바르디아의 인근 지역을 점령합니다.
바다에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전투를 위해 많은 함대를 제작하고 이를 출정시켰습니다. 주요 경쟁자는 피사 ,제노바, 베니스였는데 끝 없는 분쟁 속에서 제노바가 피사를 이기게 되고 15세기 제노바의 세력이 쇠퇴하면서 결국 베네치아가 선두를 잡게됩니다.
육지에서는 수십년간의 전투로 인해 피렌체, 밀라노, 그리고 베네치아가 강력한 도시 국가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1454년 마침내 세 도시 국가들이 로디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멈추게 됩니다. 이 평화는 40년여간 지속됩니다. 15세기 초 Niccolo와 같은 모험가와 무역상은 머나먼 동남아시아까지 여행하고 돌아오며 세계 정세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들여오게 됩니다.
이탈리아 전쟁
1547년 이탈리아 전쟁
1494년 프랑스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놓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스페인등이 벌인 전쟁으로 북부 이탈리아에 황폐화를 일으키고 많은 도시 국가의 독립을 종식시키게 만듭니다. 원래 밀라노 공국과 나폴리 왕국의 분쟁에서 시작되었는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게 되며 전쟁의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 이탈리아 5대 도시국가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오스만 제국 등)
프랑스군은 파비아 전투 (1525)와 코냑 동맹 전쟁 (1526-1530)에서 신성 로마 제국에 패하게 됩니다. 결국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합스부르크 패권을 시작합니다.
한편 베니스의 근처는 1499년 투르크족에 의해 침략당하고 1509년에 다시 캉브레 동맹에 의해 침략당합니다.
1527년에는 반란을 일으킨 독일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 르네상스 예술과 건축의 가장 큰 후원자인 교황의 역할에 큰 스크래치를 남기게 됩니다.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이탈리아 도시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침략자들에게 인질 몸값을 지불하는 등으로 긴급 세금을 운용하면서 재정도 고갈되게 됩니다. 롬바르디아의 양모와 비단 사업도 침략자들에 의해 베틀 등 도구들이 망가지며 무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