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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 - 중세 시대

to101 2023. 5. 8. 00:44

이탈리아 역사 - 중세 시대 (Middle Age)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로마 통치는 Ostrogoths가 이탈리아를 정복하며 끝나게 됩니다. 이 후 동방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군대는 로마 제국 재건 목적으로 이탈리아에 오게 되고, 이로 인해 기근, 전염병 등으로 나라 전체를 폐허가 되게 만드는 고딕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건 또 다른 게르만 부족 중 하나인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을 점령할 수 있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751년 롬바르드족은 라벤나를 침략하고 이탈리아 북부의 비잔틴 통치를 마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황청은 프랑크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756년 프랑크족 군대는 롬바르드족과 전투를 통해 승리를 거두고 이탈리아 중부에 대한 법적 권한을 교황하게 부여하는 교황령을 세웁니다. 그리고 800년 카롤루스가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동로마제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교황 레오 3세는 여기에서 벗어나 독립적은 권력을 원했습니다. 이로 인해 추후 동서 교회의 분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교황청은 서유럽 내 종교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자 하였고, 주교의 임명권을 두고 봉건 영주들, 왕, 공작 들은 교황청과 다투게 됩니다. 1122년 보름스 협약으로 오직 교황만이 주교를 서임할 수 있게되나 이는 중세시대 내내 민감한 쟁점 중 하나였습니다.

814년 얼마 되지 않아 황제가 사망하게되고 이로 인해 제국은 붕괴됩니다. 이탈리아에 이렇게 권력 공백이 생기게되며, 아리비아 반도, 북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이슬람의 부상이 시작됩니다. 북부에서는 코뮨의 세력이 부상하였고 남부에서는 852년 사라센이 바리를 점령, 토후국을 세우게됩니다. 이슬람의 통치가 시칠리아에서 시작되어 1061년까지 지속됩니다. 시칠리아 토후국은 1061년 멸망할 때까지 시칠리아 지역에서 이슬람 + 비잔틴 문화가 섞인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킵니다. 또 이 이슬람 세력은 이탈리아 전 지역을 간간히 공격하는데, 846년 로마를 침공하여 성베드로 대성당을 불태우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교황은 이슬람 공격을 막기 위해 바티칸 성벽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소수의 독립적인 도시국가들도 정복되는데, 1130년 시칠리아의 로제 2세는 시칠리아 노르만족 왕국을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로제 2세는 시칠리아의 첫 번째 왕이었으며 남부 이탈리아의 모든 노르만족 정복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를 지닌 왕국으로 통합하는데 성공합니다. 1155년 마누엘 콤네노스 황제는 노르만족으로부터 남부 이탈리아를 되찾으려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158년 비잔틴 제국은 이탈리아를 떠납니다. 시칠리아 노르만 왕국은 1194년 독일 호엔슈타우펜 왕조가 시칠리아를 차지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이 후, 시칠리아 왕국은 19세기까지 다양한 왕국에 의해 지배됩니다. 

 

12세기-13세기 사이 이탈리아는 알프스 북쪽 봉건 유럽과는 다른 정치 패턴이 나타나게 됩니다. 유럽의 다른 지역처럼 지배적인 세력이 등장하지 않아 과두제 도시 국가 형태로, 교회의 직접적인 통제와 제국의 권력을 어느 정도로 견제할수 있는 거리에 있는 많은 독립 도시 국가들이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탄생하고 꽃 피울수 있는 예술적, 지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됩니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봉건주의에서 벗어나고, 상업에 경제적 기반을 두게 됩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베니스로, 이는 봉건제 또는 절대군주제에 비해 더 자유롭게 과학적, 예술적 발전을 촉진하게 되는 기반이 됩니다. 

이 기간 동안 피렌체, 루카, 제노아, 베니스, 시에나, 밀라노 등의 도시국가가 발전되고 13세기-14세기 동안 이 도시들은 유럽의 주요 금융 및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게 됩니다. 

10-13세기까지 이 도시들은 자치를 위해, 그리고 지중해 전역의 무역 네트워크를 지원, 보호를 위해 함대를 건조하고 이는 추후 십자군 전쟁에 이용되게 됩니다. 해양도시국가, 특히 베니스와 제노바는 아시아와의 무역을 위한 유럽의 중요한 관문이 되고 멀리 흑해까지 식민지를 건설, 종종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지중해 세계와의 무역을 통제하고 관할하였습니다. 반면 피렌체는 고도화로 조직화된 상업 및 금융 도시 구가로 발전, 수세기 동안 비단, 양모, 보석 등을 수출입하는 주요 포인트가 됩니다.